연재소설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20회)

충남시대 2024. 4. 2. 13:56

신체의 중심은 배꼽이 아니고 음분디?


1964. 12. 6

  오늘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독일을 국빈 방문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독일 파견 광부들이 가장 많은 함보른 탄광회사를 방문하여 한인 광부 300여 명과 간호원 50여 명이 모인 회사 강당에서 연설하고 노고를 치하했는데 그 자리는 눈물바다가 되었다. 가난한 나라의 대통령이 부자 나라의 탄광에서 파견국민을 만난 그 감회야말로 오죽했겠는가!

  내가 기동대로 발령 난 것은 박 대통령이 서독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직후였다. 날씨가 풀리면 시국이 더욱 시끄러워질 기미가 보이는 터라 기동대의 역할은 컸다. 내자동 기동대 운동장에서는 매일 진압훈련이 실시되었다.
  기동대는 경찰의 정예부대였다. 서울경찰청 관내 어느 곳이든 상황이 터지면 우선 출동하는 부대가 기동대였다. 다중범죄진압이 주 업무인 기동대야말로 젊고 튼튼한 직원으로 선발된 가장 믿음직스러운 조직체였다. 그런 정례부대도 상황이 없는 겨울철에는 우리에 갇힌 짐승 꼴이었다. 때문에 밤에는 일선 경찰서로 지원근무를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주로 폭력배나 도범 단속 같은 방범근무나 윤락행위 같은 풍기문란사범 단속이 업무였다.
  나도 자주 매춘부 단속을 나가야 했다. 종로 3가나 영등포 역전 같은 공창지대는 윤락이 허용되어 있지만 손님을 유혹하거나 강제로 끌어들이는 호객행위는 단속 대상이었다. 단속된 아가씨들은 즉결재판에 넘겨져 구류를 살거나 벌금을 물게 되고 보호소에 수용되기도 했다. 
  “여러분은 놀러 가는 게 아닙니다. 사회기강을 세우는 중차대한 업무수행입니다. 단속을 소홀히 할 경우 종로 일대가 썩고 서울이 썩고 나중에는 대한민국 전체가 썩는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우리가 매춘부를 단속하는 당위성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인솔자의 말에 멍청한 대원 하나가 아는 체를 했다. 
  “종로 3가 같은 공창은 왜 만들었습니까?”
  단속하려면 애초부터 왜 묵인했냐는 편리한 질문이었다. 인솔자는 입술에 침을 발랐다. 자기의 유식함을 드러낼 좋은 기회였다. 
  “당연한 질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아주 없앨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성욕은 인간의 기본 욕망이기 때문이죠. 거기에 공창의 의의가 있겠습니다만, 예를 들어 대한민국 땅을 사람의 몸뚱이로 칩시다. 그 몸 구석구석에 번진 종기를 한 곳에만 곪도록 하면 치료가 수월할 텐데 그 대책이 바로 공창입니다. 한 곳에 모아진 종기가 크게 번지지 않도록 계속 치료하는 게 바로 여러분들의 업무입니다. 그 종기를 필요악(必要惡)이라고 합니다만.”
  “그럼 온몸의 종기를 한 군데로 모을 곳이 어디가 적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야 팔다리 같은 어느 한 부분이 좋겠죠. 치료하기가 쉬운 부위인 데다 만약 곪아도 도려내기 쉬우니까.”
  “종로는 팔다리가 아니고 신체의 중심부랄 수 있는 배꼽이 아닙니까.”
  “중심은 배꼽이 아니고 음분디?”
  충청도 출신 대원이 끼어들었다. 
  “그라이까네 음부가 맑아야 팔다리도 맑지러.”
  이번에는 경상도가 동감을 표시했다. 이야기가 걷잡을 수 없이 흘렀다.
  “자자자, 그만 떠들고 단속 나갈 채비나 해요. 오늘은 꼭 두 건 이상 실적을 올리도록.”
  인솔자가 잡담을 막았다. 나도 사복으로 갈아입고 출동 버스에 올랐다. 내가 배치된 곳은 종로 3가였다. 현지에 도착한 나는 피카디리극장 뒷골목을 천천히 걸어갔다. 여기저기서 남정네를 유혹하는 장면이 목격되었다. 하지만 먹고살기 위해 몸을 파는 그녀들을 도저히 연행할 수 없었다. 아무리 건수 위주의 단속이라 해도 연행할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호텔이나 여관 같은 데로 불려 다니는 콜걸이야 그래도 매춘부 중에서 부르주아 계급에 속했다. 하지만 길바닥에 벌벌 떨고 서서 유객 하는 공창은 참으로 보기가 딱했다. 골목 구석구석에 새떼처럼 모여 있는 매춘부들의 모습이 눈물겨웠다. 그렇다고 그냥 둘 수도 없었다. 나는 한건이라도 단속을 해야 했다. 빨리 건수를 채운 대원들은 일찌감치 대폿집에 들어앉아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추위를 달랠 것이었다. 나는 바지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은 채 슬슬 골목을 걸어가며 참새가 달라붙기를 바랐다. 찬바람이 골목을 비집고 밀려왔다.
  “쉬었다 가세요.”
  아가씨 하나가 내 팔을 끌었다.
  “이러지 마.”
  나는 얼떨결에 그녀의 팔을 뿌리쳤다. 단속을 해야 할 사람이 단속거리를 버린 셈이었다. 매춘부 단속을 기피했대서 중대한 업무 포기는 아닐 성싶었다. 도둑과 폭력배를 열심히 잡고 데모를 열심히 진압해 온 공로자인데 그깟 매춘부 단속을 기피했대서 징계 먹을 짓은 아니었다. 나는 단속을 포기한 채 앞만 보고 걸었다. 그때 아가씨 하나가 자꾸 찰떡처럼 늘어붙었다. 그녀는 경찰관임을 눈치채지 못하고 내 허리를 팔로 휘감아 끌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손끝이 허리춤에 끼워둔 수갑에 닿았는지 기겁을 하며 도망쳤다. 그 아가씨가 도망치는 모습을 보고 골목에 늘어선 다른 아가씨들도 덩달아 후다닥 도망쳤다. 나는 너붓이 웃었다.
  “에이씨, 재수 없게 걸릴 뻔했잖아, 퉤퉤.”
  골목 저쪽에서 달아난 아가씨가 침을 뱉었다. 나는 그 침 뱉는 짓이 밉지 않았다. 내게 침을 뱉는 그 모욕에서 숫제 연민이 느껴졌다.


1965. 1. 31

  기동대 대기 시간이 지겹다. 오후에는 바둑을 두다가 루터 킹 목사의 글을 읽었다.
  “.....간디를 연구한 결과 나는 참된 평화주의란 악에 대한 비저항이 아니라 악에 대한 비폭력적인 저항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1965. 2, 5

  주월한국군 군사원조단(비둘기부대) 결단식을 가졌다. 종로에서 퍼레이드가 열려 연예인 등이 행진하는 군인들 목에 화환을 걸어주고 도로에는 종이꽃가루가 날렸다. 


1965. 5. 27

  미국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는 박정희 대통령 경호경비를 나갔다.

  미스 강이 찾아왔다. 그녀는 숙대 음대생이다. 태호와 셋이 남산에 올라가 사진을 찍었다. 태호가 처음으로 “아빠” 한다. 


1966. 1. 8. 

  새벽 1시. 고요한 밤이다. 나는 콧노래를 불렀다. “가련다 떠나련다 어린 아들 손을 잡고, 감자 심고 수수 심는 두메산골 내 고향에.....”
  어느새 눈물이 흐른다. 지독한 외로움이다. 하지만 나는 개척할 수밖에 없다. 그 꿈이 너무 크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다. 하지만 개척해야 한다. 
  나포레옹의 말처럼, 번갯불 위로 미끄러져가야만 되는 그런 의지로 투쟁해야 된다. 내 존재목적이 뭔지는 자세히 몰라도, 꼭 이룰 수밖에 없는 그 불후의 창조.....


1966. 7. 2

  통금이 시작된 을지로통의 정막과 낡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명상의 멜로디가 조화를 이룬 탓인지 모처럼 조용해진 을지로3가파출소가 푸른 화원처럼 여겨진다. 여기 카오스에서 저기 코스모스를 그리워하는 내 마음에 금방 오색 꽃이 피어난다. 하지만 그 꽃은 아름다운 꽃이 아니라 우중충한 죽음의 모습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것이 나를 탈출시킬 에너지다. 끊어버리고, 부수고, 불사르고 싶은 거대한 반항의식에 불을 지필 그 힘에 나는 희망을 걸고 산다. 눈물마저 사치라고 여겨온 내게 탈출만이 생존조건이다. 언제 다시 돌아갈까, 내가 떠나온 곳으로.... 그런 노스탈쟈는 내 詩(시))가 된다. 


1966. 7. 3

  112 신고를 받고 출동하니 다섯 명이 낮술에 취해 야단이다. 그런데 그들을 제압하다 힘이 달리는 바람에 그중 하나가 시멘트 담에 얼굴을 찧어 피가 튀었다. 순간 업무상과실치상이 머리를 스친다. 그들은 H부대 장교들로서 경찰관이 다리를 걸어 넘어졌다고 떼를 쓴다. 하지만 서로 공직자 신분이어서 쉽게 해결을 보았고, 오히려 그들이 미안하다며 사과하러 왔다.


1966. 7. 9

  어젯밤 장충체육관에서 김일 선수가 참가하는 국제레스링대회 경비 후 귀가해서 이 일기를 쓴다. 마침 촉촉이 내린 비가 심야의 적막을 무겁게 누르고 있다. 그때 보들레르의 시구가 화산처럼 내 가슴속에서 폭발한다.
  “독수리 같은 손톱으로 내 가슴을 파고....”
  오 태풍아 불어라! 태산아 폭발하라! 대지여 꺼져라! 불꽃이여 튀어라! 人馬여 쓰러져라! 독수(毒水)여 넘쳐라! 찬란한 죽음이여! 창조의 광기여!


1966. 9. 5
  
  5일 동안 대간첩작전을 치렀다. 비를 맞으며 망우리 공동묘지에서 밤을 새웠다. 
  자신의 설득력을 실험할 수 있는 직종이 경찰생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