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57회)

충남시대 2025. 2. 4. 13:42

성지순례에서 만난 미모의 톱 탤런트


1991. 5. 1

  드디어 성지순례 여행이 시작되었다. 안영채가 처음 내게 접근한 것은 이집트 여행 마지막 날이었다. 그동안 나는 안영채를 피해왔다. 여행지마다에서 식사를 할 때나, 사진을 찍을 때나, 밤에 자유시간을 보낼 때도 일행 모두가 안영채를 중심으로 모였지만 고고한 문인의 위상에 함몰된 나는 그런 짓이 싫었다. 그래서 일행과 겉돌았고 일부러 영채를 기피했다. 단체사진을 찍을 때도 맨 뒷줄에 서서 찍곤 했다. 그런데 멤논의 거상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을 때였다. 맨 앞줄 중앙에 모셔져야 할 영채가 어느새 맨 뒷줄 내 곁에 서 있었다. 내가 얼른 자리를 비키려 하자 그녀는 내 팔을 잡으며 “그냥 여기서 찍으시죠.” 하고 말을 걸었다. 그때부터 나는 입이 열리기 시작했고 영채는 노골적으로 나와 붙어 지냈다. 식사를 할 때도 나란히 붙어 앉아 먹고, 버스로 이동할 때도 꼭 내 옆좌석에 붙어 앉았다. 심지어 내가 늦게 승차하면 자기 옆좌석에 모자를 놓아두었다가 나를 앉히곤 했다. 그 모습이 일행의 눈에 거슬릴 지경이었지만 영채는 타인의 시선을 개의치 않았다.
  “선생님이 내 곁에 오실 날을 기다렸죠. 그런데 열흘이 지나도록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앞으로 남은 기간은 닷새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래서 내가 선수를 칠 수밖에요.”
  이집트 여행을 마치고 시나이반도를 지날 때 영채가 한 말이었다. 그녀가 내게 더욱 적극적으로 접근한 것은 성지순례 후에 쓴「겟세마네교회에서 흘린 이상한 눈물」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겟세마네교회에서 내가 손바닥으로 눈물을 감추며 버스에 올랐을 때 내 손을 잡고 그 눈물은 주님의 은혜라고 속삭였던 것이다. 다음은『예루살렘의 슬픔과 영광』에 실린「겟세마네교회에서 흘린 이상한 눈물」 축소판인데 A4 용지 6장 분량을 1장으로 압축한 글이다.

  .....이상한 눈물, 나한테 그 체험은 분명 큰 사건이었다. 만약 내가 기독교인이라면 그것은 사건이 아니라 모름지기 지극한 경배일 따름이었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교회당 안에서, 그것도 예수님이 로마군에게 잡혀가기 직전 기도한 장소에서 눈물을 흘린 그 감격이야 말로 당연한 신앙행위였다. 하지만 예수님을 영적인 존재가 아닌 탁월한 휴머니스트로 여겨온 내가 어처구니없이 흘린 그 눈물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일까?
  실내 불빛은 은은했다. 강단 배면에 위치한 바위 안반에는 파르스름한 조명이 깔려 있었다. 일행이 모두 기도하는 동안 나는 기둥 뒤에 숨어서 예수님이 앉아 고뇌했을 바위 안반을 눈여겨보았다. 그렇게 안반을 멍하니 바라보며 서 있다 보니 어느새 교회 안에는 나 혼자만 남게 되었다. 점점 외로움이 밀려왔다. 그때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번 쏟아지기 시작한 눈물은 홍수가 되어 얼굴을 적시고 앞자락을 적셨다. 눈물을 그치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허사였다. 심호흡을 하며 감정을 누르려해도 눈물은 더 거세게 솟구쳤다. 정말 어이없는 눈물이었다. 그런 홍수 같은 눈물은 난생처음이었다. 도대체 그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왜 가슴살을 쥐어뜯을 만큼 벅차게 솟구쳤을까? 그것도 하필 겟세마네교회에서?
  나는 실컷 울어보는 게 소원이었다. 실컷 우는 대가로 지옥에 가도 좋을 만큼 실컷 울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 아무것도 나를 실컷 울리지 못했다. 성장기의 가난, 자살충동, 비참한 노동, 늦깎이 대학생, 늦깎이 작가, 그래서 타고난 재능을 제대로 펼쳐보지 못한 한(恨), 그런 것들은 결코 나를 제대로 울리지 못했다. 그 울음욕망은 드디어 고통과 친숙하기에 이르렀다. 고통과 친숙하다 보니 아름다움이 낯설었다. 오죽해야 꽃이 두려웠을까. 나는 감히 꽃을 만질 수 없었다. 아름다운 것은 나 아닌 타인만이 만질 수 있는 존재였다. 내가 아름다움을 느끼는 건 죄악이었다. 추한 것, 냄새나는 것, 지저분한 것만 상대해 온 나는 그것들의 천한 가치에만 익숙했지 아름다운 것은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다. 아름다움이 낯설다 보니 행복도 낯설었다. 행복은 오로지 남의 것이었다.

1991. 5. 4

  이집트 여행을 마치고 4일 동안의 이스라엘 성지순례에 들어갔다. 코스는 스위즈운하를 건너 국경선에서 이스라엘 리무진 버스를 타고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파괴된 성전의 성벽을 관광하고 메마른 기드론 골짜기를 가로질러 감남산(올리브산)에서 겟세마네승천교회에 들렀다. 여기에서 나는 알지 못할 통곡을 쏟았는데, 눈물이 젖은 상태로 버스에 올라 베들레헴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예수님이 출생하신 마구간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었다. 다음에는 기원전 8000년 신석기시대에 생성된 고대도시 여리고로 가서 1박 하고 이튿날 사해로 향했다. 해발 마이너스 430M로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소금물 호수였다. 나는 알몸으로 입수했는데 정말 몸이 둥둥 뜬 상태로 물놀이를 즐겼다. 사해에서 요단강 북쪽으로 100km 올라가 갈릴리호수에서 수영하고 공동농장 막사에서 1박 했다. 이튿날에는 아침 일찍 가버나움으로 향했다. 요한, 마가, 누가, 막달라 마리아가 태어난 가버나움을 관람하고 예수님이 자란 나사렛으로 향했다. 갈멜산에서 기슭을 거닐다가 수도 텔아비브에서 1박 하고 지중해 해변을 산책하다가 텔아비브공항에서 도쿄행 비행기를 탔다.
  도쿄에서 갈아탄 서울행 비행기에서는 불을 켜고 기행문을 정리했다. 그때 창가 줄에 여동생과 앉아 있던 안영채가 몰래 내 좌석 뒤에서 글 쓰는 모습을 지켜보며 애정 어린 미소를 짓다가 인기척을 거니챈 나한테 들키고 말았다. 나도 그때 모처럼 가슴에 번지는 정감이 느껴졌다. 그녀의 여동생 순애는 “김 선생님 공부하는 모습이 참 멋있다.”라고 하며 “이집트에서도 언니가 김 선생님과 함께 다니고 싶어 했지만 이목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성지를 순례하면서도 영채는 늘 내 곁에 붙어 다녔고, 겟세마네교회에서 내가 손바닥으로 눈물을 감추며 버스에 올라탄 내 손을 잡고 그 눈물을 주님의 은혜라고 속삭일 때도 미처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김포공항에는 밤중에야 도착했다. 영채는 나를 마중 나온 아내에게 솔직한 심정을 드러냈다.
  “잔아 선생님은 순수하고 존경할 분이세요.”
  그때 수니는 상냥한 미소를 지어 보였는데 집으로 향하는 승용차를 운전하며 이런 말을 했다.
  “같은 여자지만 정말 반할 정도로 미모네요.”
  그러면서 왜 둘이 먼저 출구를 나왔냐고 물었다. 나는 입국수속을 하다 보니 둘이 먼저 나오게 되었노라고 둘러댔다. 영채에게서 서초동 집으로 전화가 걸려온 것은 귀국 이튿날 초저녁이었다. 저녁을 먹고 이층 서재에서 작품을 쓰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영채는 먼저 수니의 덕스러운 인상을 칭찬하고 나서 여독이 풀리는 대로 만나자고 했다. 나는 망설이는 기색 없이 확답을 주었다.
  전화가 끝나자 창문을 열었다. 정원등 불빛에 드러난 파란 솔내음이 코끝에 설핏했다. 춘천옥을 개업하고 2년 반 만에 구입한 2층 단독주택이었다. 위치가 서초동 고급 주택가 앞 상가여서 비싼 값을 치러야 했다.

  안영채에게서 두 번째 전화가 왔다. 직접 자기네 집에 오라며 집 위치를 알려주었다.
  “저희 가족들도 선생님을 뵙고 싶어 해요.”
 
1991. 5. 9

  안영채의 집으로 찾아가자 온 가족이 정답게 맞아주었다. 어머니는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딸과 함께 나를 방으로 안내했다. 안영채의 방은 가구가 모두 고풍스러웠다. 두 사람은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인천으로 차를 몰았다. 해변에서 회를 먹고 강화도 해변일대를 돌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내 작품을 읽고 너무 감동했다고 한다. 초진 그녀의 단골집에서 회를 먹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거의가 사변적인 이야기였다. 처음으로 둘이 껴안았다. 꿈에서 깨어난 듯 그녀는 얼른 뒤로 물러앉는다. 그녀는 몸이 약해 탈이다. 만성 위궤양인데. 4년째 앓는다고 했다.

1991. 5. 10

  영채 집에서 이야기하며 놀다가 내가 지난밤에 쓴 메모를 보여 주었다. 모두 읽고 난 그녀는 눈물을 글썽거린다. 감동을 받은 모양이다.
  안영채는 자기가 쓴 책『걸음마로 돌아본 동남아』와『더 많은 빛을』을 내게 주었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오래된 모양이다. 정식 등단한 TV 탤런트는 자기뿐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녀의 글은 다듬어지진 않았지만 광기가 빛난다. 자존심이 너무 강하고 그걸 숨기지 않는 게 약점이다. 영화감독이나 방송국  PD한테 남들은 아부하는 판인데 그녀는 대든다고 한다. 그래서 미움을 사지만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자기 얼굴을 신앙할 정도로 나르시시즘이 강한 여자다.
  “나는 미인을 좋아해요. ‘미스코리아’를 뽑을 때마다 심사를 맡는 것도 그 때문이죠.”
  나는 기독교인인 그녀에게 스스로 하나님을 만들라고 했다. 내가 고통을 종교로 삼았듯이. 그녀는 나와 편지를 왕래해서 나중에 서한집을 내자고 한다.

  오후에는 한강 고수부지에 가서 차 안에서 종교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나로서는 처음 가보는 셈이다. 그녀는 내게 실력이 그 정도이니 굽히지 말고 고자세를 취하라고 한다. 의외로 보수적인 여자다. 차를 세워놓고, 포장마차에서 시켜온 비빔국수 쟁반을 승용차 앞 좌석 가운데에 놓고 마주 앉아 비벼먹던 맛, 안영채는 어떤 음식보다 맛이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