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시대는 충남의 천재로 불리우던 불우소년 남문우 변호사 자서전을 본지에 연재한다. 남변호사의 가시밭길을 헤쳐가면서 성공한 삶의 사례가 젊은 세대에게 교훈이 되고 지침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독자들의 많은 성원이 있기를 기대한다.
중·고등학교 학창시절의 추억Ⅰ
⃟자랑스러운 모교
예산중학교와 예산 농업고등학교
나는 1948년 9월(당시는 9월에 학기에 시작되었음), 예산에 있는 예산공립농업중학교에 입학하였다. 아산시 도고면 시전리에 살던 나는 당연히 같은 시(온양온천)에 있는 온양중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순리였다.
그런데 당시 온양중학교는 해방 후에 생긴 신생학교이고 예산공립농업 중학교는 역사와 전통이 있는 명문 실업학교였기 때문에 나는 예산공립농업중학교를 택하여 시험을 봐서 합격하여 예산공립농업중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그것이 6년 간 중·고등학교 교육을 무사히 마치게 해준 계기가 될 줄은 그때는 꿈에도 몰랐다.
당시 예산공립농업중학교에는 반에서 학업성적이 1등인 학생에게는 수업료 전액을 면제해 주는 특대생 제도가 있었다. 나는 다행이도 입학시험에도 전교 1등으로 합격하였고, 학교에 입학한 이후 줄곧 반에서 수석을 해서 특대생으로 선정되어 수업료를 전액 면제받고 공부를 할 수 있었다.
6.25사변 이후 학제가 개편되어 예산중학교와 예산농업고등학교로 분리된 후에도 중학교와 고등학교 모두 특대생 제도 덕분으로 나는 6년간 수업료 한 푼 안 내고 중·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예산농업중학교를 택하지 않고 온양중학교나 다른 학교에 진학했더라면 중학교 3학년 때 집안의 기둥이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더욱 어려워진 가정 형편 때문에 고등학교 교육은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해방과 6.25사변을 거치면서 나라 전체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때인지라 특대생 제도 같은 장학제도가 있는 중·고등학교는 전무했던 것을 생각하면 나는 예산농업중학교에서 공부하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내 인생에서 얼마나 고마운 학교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항상 예산중학교와 농업고등학교를 나온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며 누구보다도 학교를 사랑하였고 항상 무엇인가를 갚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이후 예산농업고등학교가 1967년경 전문학교로 승격되고, 다시 사년제 대학으로 바뀌면서 학교 이름도 공주대학교 산업대학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모교도 잃고 동창회도 후배가 없는 고사상태인 채로 없어질 날만 기다리고 있는 딱한 처지가 되었다. 전문학교나 대학을 세우려면 별도로 세우면 될 것을 왜 팔십여 년 역사와 전통을 가진 고등학교를 송두리째 없애 버렸는지 나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당시 그것을 추진했던 사람들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나는 몇 해 전 잃어버린 모교를 되찾아 보려고 예산농업학교 총동창 회장까지 맡아보았으나 역부족임을 깨닫고 중도 하차한 적도 있다.
얼마 전 모교의 교정을 사용하던 대학도 딴 곳에 새로 건물을 신축하여 이전하고 내가 6년 간 다니면서 정들었던 모교 건물도 다른 사람에게 팔려 헐리고, 예농의 상징이던 플라타너스 숲도 모두 베어버려 모교의 흔적은 완전히 없어져버렸다. 그러나 나를 키워주었던 자랑스러운 <예산농업고등학교>는 영원히 내 가슴 속에 살아있다.
⃟내 인생의 첫 번째 기적
1950년 6월 25일 북한 인민군이 남침하여 순식간에 우리나라는 낙동강 이남을 제외한 전 지역이 인민군의 수중에 들어갔다. 당시 나는 중학교 2학년 학생이었지만 자연스럽게 휴교 조치되어 고향집에서 부모님을 도와 농사일을 하고 있었다. 조용하던 시골 우리 마을도 인민군 세상이 되자 마을에서 소위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무식한 이웃 아저씨들과 머슴을 살던 젊은이들이 공산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붉은 완장을 차고 이제 우리 세상이 왔다면서 잘살던 사람들을 잡아다가 소위‘인민재판’을 열어 반동으로 몰아 죽창과 몽둥이로 때려 땅에 생매장하여 죽이고, 또한 재산을 몰수하고 큰 집을 빼앗아 자기들이 차지하는 등 차마 눈으로 볼 수 없는 광경이 벌어졌다.
나는 당시 공산주의가 무엇이며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또 어느 세상이 우리를 잘 살게 해 줄 수 있을지 판단하고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지 못한 때였다. 하지만 그들이 미쳐 날 뛰는 광경을 보고 그들의 세상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예감하고 있었다. 당시 농촌에는 라디오도 없고 또 나라 정세를 판단하는 똑똑한 어른들이 없었기 때문에 전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수 없었다. 마치 캄캄한 밤중을 더듬는 것 같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오직 세상이 바뀌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암흑 속에서도 위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은 매일 수 십대씩 소위 호주산 비행기들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날이 갈수록 그 비행기 숫자가 늘어나고 인민군 비행기는 한 대도 날지 못하는 것을 보고 전쟁이 유엔군의 승리로 끝날 것이란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음력 추석 이틀 전쯤으로 기억되는데, 나는 그 당시 김장 무와 배추를 심은 밭에서 호미를 가지고 땅에서 갓 움터 나오는 무와 배추 싹을 보호하기 위하여 잡초를 뽑고 있었다. 그 때 윗집에 사는 안 모군(오래 되어 이름은 기억 안남)이 뛰어 오더니, “야, 문우야! 너에게 의용군 징집영장이 나왔다. 우리 마을에서 한 이십여명 나왔는데 나도 나왔고, 김석산(나와 초등학교 동기동창임)이도 나왔어.”하면서 나에게 의용군 징집영장을 주는 것이었다. 나는 친구로부터 징집영장을 받자마자, “미친놈들, 나이 어린 나한테까지 징집영장을 발부하는 것을 보니 이제 최후 발악을 하는구나.”하고 화를 내면서 더 생각할 것 없이 그 징집영장을 발기발기 찢어서 호미로 땅을 파고 묻어 버렸다.
“야! 네 것도 내놔. 찢어서 땅에 묻어 버리게.”라고 하니 그 친구는 “야! 너 죽을려고 환장을 했구나. 오늘 오후까지 인민군위원회로 오라고 하는데 안 가면 너는 붙잡혀 가서 죽는다.”라면서 그대로 가 버렸고, 그는 내 친구 김석산 등 마을 소년 이십여 명과 함께 그 날 저녁 인민군위원회로 가고 말았다. 내 친구들이 의용군에 들어가고 바로 그 다음날 낮에 우리 마을에 대한민국의 국군이 탱크를 앞세우고 들어왔다. 그 전날 의용군에 들어간 이십여 명의 소년들은 육십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한 사람도 돌아오니 아니하였고, 그들이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확인할 길도 없다.
나는 지금도 의용군 영장을 받고 내가 취했던 행동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칠 정도로 전율을 느끼곤 한다. 내가 만일 그 때 내 친구의 말대로 그들을 따라 의용군에 나갔더라면 오늘의 나는 이 세상에 없었을 것이다. 나는 호적상 1934년 10월 27일 생으로 당시 만 16세가 채 안 된 어린 나이로 인생의 중요한 판단을 내리기에는 미숙한 나이였다.
그러나 나는 즉석에서 나도 모르는 결단력을 발휘하여 징집영장을 찢어 버렸고, 그 뒤에도 부모님께 말씀 드리면 걱정하실 것 같아 말씀도 안 드리고 태연히 지냈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그 당시 어린 나이에 즉흥적으로 한 행동이 똑똑하고 판단력이 뛰어나서 내린 결정으로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다. 다만 무언가 위대한 힘이 나를 죽음의 길로 몰아넣지 않기 위하여 어떤 계시를 주신 것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나는 이 사건을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첫 번째 맞는 ‘기적’이라 여기고,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이 사건을 떠올리면서 어떻게 난관을 뚫고 나갈까를 깊이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이 ‘기적’같은 행동은 나에게 죽음과 삶의 갈림길에서 삶의 길로 나를 인도해 준 사건이었기 때문에 항상 그 때의 ‘철모르는 결정’에 내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면서 뭔가 더 큰 힘에 늘 감사하면서 오늘까지 살아왔다.
다음호에 계속
출처 : 충남시대뉴스(http://www.icnsd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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