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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2회)

K시 시장 딸이 찾아오다 “뭐라고요? 민주가 저를 사랑하지 않으면 꼽추가 된다고요? 그럼 민주한테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전하겠습니다.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신세 망친다고요.” 핸드폰을 들고 그런 식으로 공갈을 치면 민주는 꼼짝없이 내 애인이 되고 만다, 신나는 상상이었다. 그런데 그 상상은 부산중학교에 다니고부터 이루어질 기미가 보였다. 초등학교를 1등으로 졸업하고도 산에서 나무만 하던 내가 부산에서 제일 명문인 부산중학교 학생이 되었으니 민주로서는 넋이 나갈 수밖에. 이제는 민주가 애간장을 녹일 차례가 되었다. 그녀는 중학 졸업반이 되자 가슴이 더 풍만해지고 눈꼬리로 비나리칠 줄 아는, 기막힌 여학생으로 성장했지만 내 급상승한 권위와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더구나 민주는 고교 진학이 불가능한 처지였다...

연재소설 2023.11.14

연재소설[인기작가의 한국현대사 일기] 잔아일기 (제1회)

실컷 울어보는 게 소원 소설이나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생을 사셨다죠? 인터뷰할 때마다 신문기자나 아나운서의 첫마디는 대개 그러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내 생이 아무리 기구해도 오이디푸스의 신탁(神託)만큼 끔찍한 팔자는 아니었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아내로 삼아야 하는 오이디푸스의 운명에 비하면 내 운명은 수월한 편이었다. 그런데 삼년 전이었다. 67년간 써온 일기를 정리하다가 고교시절에 쓴 일기 한토막이 소름을 끼치게 했다.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아들딸 낳고 행복하게 살게 된다면 지금 당장 한강에 투신하겠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기였다. 겨우 고등학교 1학년생이 그따위 생각을 하다니! 그럼 나에게도 이미 가혹한 신탁이 내려진 게 아닐까? 행복을 부정한 그 가치전복(價値顚覆)이 내 신탁이란 말..

연재소설 2023.11.07

연재소설[인기작가 잔아의 다시 읽고 싶은 장편소설] 칼날과 햇살 (제35회)

죄와 야비 “내가 솔직히 말씀드리지요.” 동호는 침착하게 말을 엮어나갔다. “방금 배형이 한 말은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배형의 속맘은 절대 자수할 의향이 아니었습니다. 이해하기 힘들지 몰라도 배형 입장에서는 자수논리보다 체포논리가 합당했다는 말이죠. 체포로 우겨야 이북 가족이 무사할 수 있는 데다 자수는 바로 배승태란 사람의 진정한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죠. 배형은 지금도 그 투쟁의지에서 뭐랄까.....” 동호는 말끝을 흐렸다. 그러자 송두문이 불쑥 아는 체를 했다. “투쟁으로 말한다치믄 사람 사는 게 죄 투쟁일 틴디유? 장사도 투쟁이구 농사도 잡풀이나 벌레와 투쟁허는 거구.” “그 투쟁과는 다르죠. 배형의 투쟁은 전략이나 전술처럼 살아가는 방편이 아니고.....” “얼래, 증말로 두 분이 끝을 볼 참인..

연재소설 2023.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