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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작가 잔아의 다시 읽고 싶은 장편소설] 칼날과 햇살 (제9회)

내레 남조선엔 가족이 없수다레 봄볕이 따스했다. 눈이 녹아 질퍽하던 경찰서 마당도 땅이 보송보송할 정도로 말라 있었다. 공판을 앞두고 구내식당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마당으로 나온 동호는 무심코 양지녘에 서서 압송 장면을 바라보았다. 아마 검사실로 검취를 받으러 데려가는 모양이었다. 간수 서너 명이 오륙 명의 죄수를 굴비 두름처럼 포승으로 엮어 압송하는 중인데 그 중에서 늙수그레한 죄수 하나가 갑자기 오줌이 마렵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직원이 큰 소리로 나무랐다. “수갑이 너무 죄어져 피가 안 통한다고 엄살이더니 이젠 오줌타령이야? 암 소리말고 그냥 참아요.” 검찰청은 가까운 이웃인 데다 모두 함께 포승을 질렀으니 한 사람을 빼기가 힘들다며 참으라고 설득했다. 하지만 영감은 막무가냈다. “그럼 바지다 싸..

연재소설 2023.04.11

남문우 前 변호사 연재 에세이

중국어 공부를 시작한 사연 나는 84세 아주 늦은 나이에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보통 외국어를 공부하는 목적은 젊었을 때 사회생활을 하는데 필요해서 써먹기 위하여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 면에서 인생 끝자락에 이른 내 입장에서 중국어를 알아둘 필요가 생기거나 앞으로 써먹을 것을 예상하고 시작한 것은 절대로 아니다. 나에게는 다복(多福)하게도 5남매의 자식들한테서 11명이나 되는 많은 손자 손녀들이 있고 그중에 2명이 결혼하여 증손주들도 4명이나 된다. 모든 손주들이 사랑스럽지 않은 놈이 없지만 내리사랑이라고 막내 손자 녀석한테 신경이 더 가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다른 손주 녀석들은 일년 가야 겨우 한 번정도 전화를 할까 말까 한데 이 녀석은 유독 할머니를 잘 따르고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휴먼인사이드 2023.04.04

[인기작가 잔아의 다시 읽고 싶은 장편소설] 칼날과 햇살 (제8회)

치부와 한은 천양지차여 이놈아 “그노므 객살이 꼈응게 바다구경 허자구 예꺼정 왔지 워디 함부로 올 딘감유. 서울보담 몇 배나 더 먼디유. 여기 오는디 워뜨게 왔능가 아세유? 기차를 타고 서울꺼정 와설랑 거기서 또 기차를 타고 밤새 달리구두 이튿날 한낮이 돼서야 강릉에 당도혔어유. 그러구두 또 뻐스를 타구설랑 한 시간여를 덜커덩덜커덩 달리고서야 사천이란 디를 왔는디, 거기서 또 시오리 길을 걸응게 그제서야 게우 바다가 뵈더라구유. 하여튼 강릉이란 디가 멀기는 육시럴허게 멀드먼유.” “충청도에도 바다가 있잖아요?” “물론 바다가 있쥬. 허지만 갯구뎅이가 씨커먼디 워디 바다 맛이 나야쥬.” “갯구뎅이라뇨?” “갯뻘 말유, 갯뻘.” “갯벌은 그 나름의 정취와 향기를 지녔잖아요?” “해금내를 향기라구요?” “해감..

연재소설 2023.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