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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작가 잔아의 장편소설] 제 7회 아내 찾아 90000리

내 꿈이 문제라구? 전화를 끊었지만 머리가 멍멍했다. 온 식구들이 발로 나를 짓이기는 기분이었다. 내가 집 가장이 아니라 천사들만 사는 낙원에 몰래 틈입한 악마 같았다. 심지어 홀애비 혼자 키운 아들놈마저 엄마 편을 들고 있으니 기막힐 노릇이었다. 물론 어릴 적부터 아빠보다 엄마를 더 사랑하라고 일러왔지만, 그랬다고 해서 엄마 편을 드는 건 아닐 성싶었다. 엄마의 인품에 끌리는 게 분명했다. 사위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처가식구를 대하는 태도가 그전 같지 않았는데, 파리에서 귀국하자마자 호프집으로 불러낸 것도 그 심보를 엿보고 싶어서였다. “도착지 호텔에서 대기할 때는 뭘 하고 지내는가?”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았다. “시내로 볼 일 보러 나갈 때도 있고, 잠자는 시간이 태반이죠.” 박 서방의 대답..

연재소설 2022.08.09

[인기작가 잔아의 장편소설] 제 6회 아내 찾아 90000리

어제 아내가 던진 유리컵은 재질이 무거운 크리스탈이었다. 컵 모서리에 찍히지 않아 마루바닥이 깊게 패이진 않았지만 파편이 백린탄(白燐彈)처럼 퍼져나가 일대에 엄청난 살상을 자행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군이 쏘아댄 백린탄은 공중에서 1차 폭발하여 사방으로 흩어지면 2차 폭발을 일으켜 근처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는데, 국제협약을 무시한 그 폭탄 투하가 우리 집 주방 마루바닥에 자행되었던 것이다. 어쨌든 아내의 그릇 투척은 대책이 시급했다. 아내의 그 새로운 전술이 버릇처럼 굳어질 경우 큰일이었다. 칼로 홍송 문짝이나 자개농을 찍은 것은 한 번으로 그쳤지만 그릇 투척은 시시한 부부싸움에도 쉽게 화풀이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어 싹수부터 잘라야 했다. 그런데 어이없는 것은 그 참혹한 ..

연재소설 2022.08.09

[인기작가 잔아의 장편소설] 제 5회 아내 찾아 90000리

처음 꺼내본 호칭 어제 치른 전쟁은 두 달 만에 터진 육박전이었다. 이번에는 아내가 칼 대신 유리컵을 던지는 전쟁이어서 피해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밤까지 연장전을 치르는 바람에 늦은 아침인데도 아내가 일어나지 않아 걱정이었다. 침실에 들어가 조바심을 내도 이불자락 밖으로 비어져나온 발가락만 꼼지락거렸다. 하지만 발가락질로 반응을 나타낸 아내의 그 말 없는 투쟁이 마치 애기의 발장난 같아 귀여워 보였다. “여보, 어서 일어나 정원에 번진 햇살을 봐요.” “여보라뇨?” 드디어 아내가 입을 열었다. “아내를 여보라고 부르면 어때서?” “딴 여자한테나 여보라고 불러.” “당신한테 여보라고 부르면 안 돼?” “아이고, 오글거려라.” “왜 오글거리는데?” “됐다! 40년 만에 불러준 호칭이라 여보 소리가 생뚱맞거..

연재소설 2022.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