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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고택나들이⑯]“대한 독립 만세“ 외치던 소녀를 기억합니다

“내 손톱이 빠져 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조국의 독립을 기도하던 유관순열사의 조국애와 민족애는 3․1운동으로 꽃피게 된다.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태화관에 집결한 29인의 민족대표들은 역사적인 독립선언식을 거행하였다. 독립선언식은 민족대표들이 이종일이 가지고 온 독립선언서를 돌려보고, 한용운의 연설에 이어 만세삼창을 하는 것으로 간단히 끝났다. 탑골공원에서는 수천명의 학생과 시민이 모여 있다가 2시 30분경 독자적인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시가지로 물밀듯 밀려나가 만세시위를 전개함으로써..

고택 나들이 2021.09.15

[기획연재 고택나들이⑮]농촌소설의 대표작『상록수』가 탄생한 곳, 심훈(沈勳)과 필경사(筆耕舍)

□심훈(沈勳) 심훈(1901∼1936)은 경기도 시흥에서 출생(시흥군 북면 흑석리 176번지는 현재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동 177번지로 지번이 통합된 상태이다. 생가 터엔 현재 흑석동천주교회가 들어서 있다)했으며, 본명은 심대섭(沈大燮)이다. 본관은 청송(靑松)이며, 호는 해풍(海風), 아명은 삼준 또는 삼보다. 1915년 교동보통학교를 나와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3·1운동으로 투옥되어 퇴학을 당했다. 1920년 중국으로 망명해 베이징[北京]·상하이[上海]·난징[南京]등지를 돌아다니다가 1921년 항저우[杭州] 지강대학(之江大學)에 입학, 192년 동아일보 기자로 입사하였다. 1925년 5월 ‘철필구락부사건(鐵筆俱樂部事件)’으로 동아일보에서 해직당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정식으로 영화를 공부..

고택 나들이 2021.09.15

[기획연재 고택나들이⑭] 민족의 혼 월남 이상재 선생 생가지

이상재선생생가지(李商在先生生家址)는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종지리에 있으며, ​한평생 고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월남이상재 선생의 생가가 있던 곳이다. 1990년 12월 31일 충청남도의 기념물 제84호로 지정되었다. 이상재 선생(1850~1927)의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호는 월남(月南), 본명은 계호(季皓)이다. 대한제국의 정치인으로써 청년운동가, 개화파운동가, 독립운동가, 교육자, 종교인 등으로 활동한 이상재 선생은 1850년 10월 26일 고려 말 대학자인 목은 이색 선생의 16대 손으로 서천군 한산면 종지리의 한산하고도 작은 마을에서 종9품 선공감 가감역관(繕工監假監役官)을 지낸 아버지 이희택(李羲宅)과 어머니 밀양 박씨 사이에서 태어나 18세까지 전통적 유교교육을 받았다. 종지리 이곳은 ..

고택 나들이 2021.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