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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고택나들이⑱] 대한민국 미술계의 거장, 운보 김기창 화백 생가지

□운보 생가지 운보 김기창 화백은 1913년 2월 18일 이곳 공주군 신상면 (현재 유구읍) 유구리 427번지에서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서울 운니동에서 태어났다는 설도 있다. 보통학교 입학 이전까지의 유년기를 이곳 공주 유구에서 지냈으며, 부친 김승환씨가 이곳에서 태어나 직장생활을 제외하고는 살았다는 곳은 분명하다.) 지금의 주소는 공주시 유구읍 창말 안길 11-13이다. 앞으로는 유구천이 유유히 흐르고 뒷산이 감싸고 있는 아늑한 창말 안길 마을이다. 칠월의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날, 김화백의 생가지를 찾았다. 큰 길에 높이 세워진 ‘운보 화백 생가지’란 푯말을 따라 골목을 들어섰다. 골목길은 잘 정돈되어 깨끗했고 사람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을 만큼 조용했다. 많은 기대를 가지고 찾은 김화..

고택 나들이 2021.09.15

[기획연재 고택나들이⑯]“대한 독립 만세“ 외치던 소녀를 기억합니다

“내 손톱이 빠져 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조국의 독립을 기도하던 유관순열사의 조국애와 민족애는 3․1운동으로 꽃피게 된다.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태화관에 집결한 29인의 민족대표들은 역사적인 독립선언식을 거행하였다. 독립선언식은 민족대표들이 이종일이 가지고 온 독립선언서를 돌려보고, 한용운의 연설에 이어 만세삼창을 하는 것으로 간단히 끝났다. 탑골공원에서는 수천명의 학생과 시민이 모여 있다가 2시 30분경 독자적인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시가지로 물밀듯 밀려나가 만세시위를 전개함으로써..

고택 나들이 2021.09.15

[기획연재 고택나들이⑮]농촌소설의 대표작『상록수』가 탄생한 곳, 심훈(沈勳)과 필경사(筆耕舍)

□심훈(沈勳) 심훈(1901∼1936)은 경기도 시흥에서 출생(시흥군 북면 흑석리 176번지는 현재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동 177번지로 지번이 통합된 상태이다. 생가 터엔 현재 흑석동천주교회가 들어서 있다)했으며, 본명은 심대섭(沈大燮)이다. 본관은 청송(靑松)이며, 호는 해풍(海風), 아명은 삼준 또는 삼보다. 1915년 교동보통학교를 나와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3·1운동으로 투옥되어 퇴학을 당했다. 1920년 중국으로 망명해 베이징[北京]·상하이[上海]·난징[南京]등지를 돌아다니다가 1921년 항저우[杭州] 지강대학(之江大學)에 입학, 192년 동아일보 기자로 입사하였다. 1925년 5월 ‘철필구락부사건(鐵筆俱樂部事件)’으로 동아일보에서 해직당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정식으로 영화를 공부..

고택 나들이 2021.09.15